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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과 감투, 그리고 국정 철학

서길원 大記者

2025년 06월 25일(수) 16:38

서길원 大記者

“장관의 철학이 곧 그 정부의 철학이다. ‘농망법’이라며 부정했던 법안에 대해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철학의 부재에 다름 아니다. 철학 부재가 아니라면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처세일 뿐이다.”

지난해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일국의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용렬함이 바늘구멍보다 못하고, 그 권세의 자리가 깃털보다 가볍다는 것을 확인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자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겠다는데도 장관들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다 계엄이 실패로 돌아가자 비로소 ‘동의 하지 않았다’는 변명에 국민은 절망했다. 벼슬아치가 되면 ‘감투를 쓴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감투가 있다면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감투가 비상계엄 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의 감투였다.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그들의 삶은 또 얼마나 빛나는 계절의 연속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장관의 자리’가 참 우습다. 감투답지 못한 감투를 쓸 바에야 차라리 짚신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 편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더 낫다는 것을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국민에게 각인 시켰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고 국민들은 땅에 떨어진, 개가 물고 다니던 감투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도대체 장관은 무엇인가’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이재명 정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첫 장관 인선을 발표하며 윤석열 정부 인사였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키면서다. "전 정부에서 일했다 하더라도 계엄이나 내란에 동참한 적 없고, 새 정부의 가치 지향에 동의해서 열심히 활동한 분이라면 진영 가리지 않고 쓰겠다는 인사다.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사"라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고양이가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한마디로 능력과 실용을 앞세운 인사라는 얘기다.

송 장관이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발의된 양곡법 개정안 등을 '농망 4법'으로 규정하고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던 인물이다. 개정안의 ‘남는 쌀 의무 매입과 양곡 가격 안정제 도입’ 등이 우리 농업의 미래를 망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장관 감투가 날아가지 않고 현 정부에서도 머리에 다시 쓸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새 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태도를 180도로 바꿨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거나 “농업인들의 삶도 나아질 수 있도록 분골쇄신하겠다”고도 했다.

장관의 국정철학이 이래도 되는가. 윤석열의 비상계엄도 옳고,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 척결을 외치며 대선에서 승리한 이재명 대통령의 주장도 옳은가. 그때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틀렸고, 이제는 맞는가. 양곡관리법은 변하지 않고, 정권만 바뀌었는데 장관의 철학은 이처럼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가. 그것도 겨우 한두 달 사이에. 장관의 철학이 곧 그 정부의 철학이다. ‘농망법’이라며 부정했던 법안에 대해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철학부재에 다름아니다. 철학부재가 아니라면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처세일 뿐이다.

장관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세상과 국민을 향한 올바른 철학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소신도 용기도 없는, 그저 보신의 기회주의에 능한 자리가 장관이어서는 안 된다. ‘흰 쥐도 못잡고, 검은 쥐도 못 잡는 고양이’가 될 수 있다.
당장 농민들과 야당에서 장관 유임을 반대하고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든든한 우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조국혁신당에서도 송 장관의 유임 결정에 반발하며 이 대통령에게 철회를 촉구할 정도다.

이상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대해 아무런 말도 못하거나 오히려 일부 찬성하던 국민의힘이 송 장관의 유임을 대하는 민주당의 모습과 겹친다. 아니길 바라지만 여당에서 대통령의 심기를 살펴, 건전한 비판마저 사라지게 될 경우 국민의 비판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고 겪어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송 장관의 결단이다. 본인이야 남들 한 번도 어려운 장관을 두 번씩이나 하는 영광이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게 영광인지 아닌지.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전 정부에서 했던 일이 과오였다’고 시인해야 하고, 과거가 맞다면 스르로 물러나는 일이다. 그게 공직자의 태도다. 유임 장관은 별도의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